! 걔들 오라고해. 가격 맞추게” “우리 생각을 어떻게 알았지?”

 

2008년 여름 삼성전자 임원회의실. 어둑어둑해지는 시간 때문인지 자리한 임원 10여명의 표정이 한결같이 어둡다. 손목시계의 초침소리,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생생히 들릴 정도로 실내는 적막하다.

 

진한 체리색 책상 빛이 반사돼서인지 정중앙에 자리한 대장 A의 얼굴엔 시종일관 붉은 기운이 가득하다. 미간에는 주름이 깊게 패인지 오래다. 떨어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의 입술이 미세한 떨림과 함께 벌어졌다. 음성은 낮으면서도 분명했다.

 

실적이 왜……”

 

“LG전자 ‘C’와 자리를 마련해 봐. 내가 직접 풀어볼 테니까

 

아무도 대꾸하지 않는다. 과거 금액수치를 잘못 말했다가 A가 던진 재떨이에 머리를 맞아 병원에 실려간 누군가를 목도한 탓이리라. 식은땀 때문인지 어느새 실내는 습기로 가득하다. A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실적이 왜 이따위냐고 물었을 텐데……”

 

A와 가장 가까이에 앉은 B가 총대를 맸다. 어차피 가만히 있어도 맞는다. 따귀의 사정거리다.

 

“LG전자가 가격을 후려치고 있어서요, 우리도 어쩔 수 없이 가격을 내리다 보니 순익이 감소를……”

 

A는 갑자기 가려워진 머리를 긁으려고 오른손을 들었다. B는 화들짝 놀라 양쪽눈을 깜박이면서 흠칫했다.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지지 않은 것을 확인한 B의 얼굴에는 안도감이 스친다. A가 결심한 듯 말했다.

 

“LG전자 ‘C’와 자리를 마련해 봐. 내가 직접 풀어볼 테니까

 

같은 시각 LG전자 임원회의실. 분위기는 삼성전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곳 대장 C는 삼성전자가 긴급 임원회의를 소집했다는 첩보를 이미 입수하고 있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의주시함과 동시에 임원들을 갈구고 있는 중이었다

 

너희들이 그랬잖아. 가격을 후려치면 된다고. 그런데 이게 뭐야. 영업이익 그래프 봤어? 개판도 이런 개판이 또 없잖아. 이대로 계속 가면 우리 어떻게 되는지 알아? X되는거야 X!”

 

때마침 여비서가 총총걸음으로 C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건넨다. 추가로 먹어야 하는 세바가지정도의 욕을 막아준, 임원들 입장에서는 은인이다.

 

대장님, A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한번 보자고 하는데요.”

 

짜증으로 가득했던 C의 얼굴이 금세 환해진다. 100억원 정도는 불우이웃돕기에 흔쾌히 쾌척할 기세다

           

그럴 줄 알았어. 이런 식의 가격경쟁은 같이 죽는 거 밖에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거지. 회사 규모상 내가 먼저 만나자고 하긴 솔직히 힘들잖아. 안그래? 늦었지만 다행이다. 조용한 장소 물색하고, 그쪽에 전달해줘.”

 

자리에서 일어선 C는 임원들에게 한 소리를 더 한다.

 

쟤들은 맘에 안 들면 때린대. 들어서 알고 있지? 난 인간적으로 그렇게는 안 하잖니. 우리는 인화경영을 하는 회사니까. 운 좋은 줄 알아.”

 

회의실 밖에서 삼삼오오 모인 임원들은 수군거렸다. ‘3시간 동안 육두문자 듣는 것 보다 차라리 한대 맞고 병원에 가는 것이 낫다가 골자였다.  

 

며칠 뒤. A C는 서울시내 모 커피숍에서 만났다. 서로 표정은 웃고 있지만 눈 빛은 극도로 경계하는 두 사람이었다. A가 말했다.

 

까놓고 얘기할게. 세탁기는 10만원에, 평판TV 20만원에, 노트북은 15만원에 각각 소비자 가격을 맞추면 어떨까 하는데. (가격을) 올리는 건 마음대로 하고.”

 

C는 기다렸다는 듯 오케바뤼! 거기까지. 내가 생각했던 것도 그거거든. 이제서야 발 좀 뻗고 잘 수 있겠는걸. 안그래?”

 

하지만 A그런데 말이야. 공정위에 걸리면 어쩌지? 과징금이 어마어마하게 나올 텐데. 그거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이……”

 

C“’리니언시 조항이라고 들어 봤지? 담합사실을 신고하면 신고 순위대로 과징금을 면제해 주는. 그렇다면 너희나 우리 둘 중에 하나는 과징금을 안 내도 되고, 하나는 과징금을 50%정도 감면 받는다는 결론이 나오지. 벌어들이는 수익으로 메우고도 남는다고

 

A모를 줄 알고 한 번 떠 본건데 역시 알고 있군. 그렇다면 합의한 것으로 알고 간다. 가격 더 떨어뜨리면 나한테 재떨이 맞는다.”

 

“’리니언시 조항들어 봤지? 과징금 면제해 주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국내에서 세탁기, 평판TV, 노트북PC 등의 소비자 가격을 담합한 사실이 적발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1244647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소비자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담합대상 제품군은 가전시장의 대표적인 소비품목에 속할뿐더러 담함과정은 보는 이의 혀를 내두르게 할 만큼 치밀했다. 대형마트, 양판점, 백화점 등의 진열대에 오른 제품들의 소비자가격은 이미 각본처럼 꾸며진 상태였다. ‘불법은 성실하다는 세간의 우스갯소리를 그대로 반영한 듯한 모양새다.  

 

전체 과징금 중 삼성전자는 2581400만원, LG전자는 1883300만원이다. 리니언시 조항에 따라 1순위로 신고한 LG전자는 전액 면제가 유력하다. 삼성전자는 2순위, 50%를 감면 받는다고 한다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두 거대회사가 서민들의 쌈짓돈을 갈취해간 이번 사건을 소설형태로 재구성해 봤다. 직접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은 어디에 하소연해야 할 지, 분노는 어떻게 풀어야 할 지 큰 혼동 속에 빠져있다.

 


Posted by Journalist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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