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청소를 하다 우연히 오래된 카메라를 발견했다. 올림푸스 카메라 펜(PEN) EE-3 모델이었다. 필름을 사용하는 고물이다.

혼수이자, 기자의 어릴적 모습을 담아낸 카메라라는 어머니의 설명이다. 필름을 넣는 뚜껑이 열리지 않는다. 셔터를 누르는 느낌도 헐겁다. 외관상 큰 하자는 없다. 수리를 하면 쓸만하겠다는 판단이 섰다.

1970년대 초반에 생산돼 1986년 단종됐다는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업체를 통한 정상적인 a/s는 기대하지 않았다. 이걸 해달라고 떼쓰면 ‘블랙컨슈머’에 다름 아니다. 그래도 한가닥 희망을 가지고 올림푸스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답변은 통화가 시작된 지 불과 10초만에 나왔다. “오래된 제품이라 a/s가 불가하다”고 했다. 방법이 없겠냐는 질문에 “현재로써는 없다”고 했다. 그렇게 허무한 통화를 끝낸 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해당 제품을 인터넷에 검색해 봤다. 놀라웠다. 아직도 이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 특히 수리는 물론 부품교환도 가능하다는 네티즌들의 글들이 넘쳐났다.

제품을 생산한 올림푸스가 직접 ‘사망선고’를 내린 제품이다. 반갑기도 했지만 강한 호기심이 밀려왔다. 입소문을 추적한 끝에 기자의 발길이 닿은 곳은 청계천 인근 허름한 카메라 수리상이었다.

일흔 살은 족히 넘었을 것 같은 할아버지가 등이 굽은 채로 무엇인가 열심히 닦고 조이고 있다. 기자가 고장난 카메라를 내밀자 기다렸다는 듯 한마디 하신다.

“회사(올림푸스)에서 수리 못하겠다고 하지? 이런건 고쳐도 돈이 안되니까 그냥 포기하는 거야. 덕분에 나 같은 늙은이가 돈을 버는 거지만......”

3만원 정도를 지불한 끝에 EE-3는 기능을 모두 회복했다. 제조사도 포기한 ‘고철덩이’가 특유의 색감을 발산하는 필름카메라로 다시 태어난 순간이다.

비록 정상적인 경로가 아니라고 해도 수리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올림푸스는 정말 몰랐을까. 간절한소비자들의 마음을 귀찮다는 이유로 애써 외면한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1919년 설립된 올림푸스는 창사 100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 기간 동안 올림푸스 제품을 끊임없이 구매한 소비자들이 존재했기에 오늘의 올림푸스는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소비자가 바라는 것은 1차적으론 뛰어난 제품 성능이겠지만, 이후의 대부분 시간은 a/s로 점철된다. 제품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는 자세는 소비자들 사이에 엄청난 신뢰감을 불러일으킨다. 제품 판매실적 향상의 원천이다.

만약, 청계천 수리상 정보를 올림푸스가 기자에게 제공했더라면 어땠을까. 40년이나 지난 지금 까지 소비자는 물론 제품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소소한 감동이 전해지지 않았을까. 카메라 구입을 고려하고 있는 지인에게 올림푸스 제품을 선뜻 권하지는 않을까.

소비자와 자사제품에 대한 기업의 무신경은 결국 부메랑이 돼 예상치 못한 피해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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